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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年09月16日

統計学を否定する南朝鮮。

* [통계로 읽는 역사]일제의 식민통치 덕분에 근대화?... 수탈의 명분 쥐어준 '통계' - 아시아경제
'식민지 근대화론'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서구열강의 식민통치를 받다가 2차대전 이후 독립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는 큰 분노를 일으키는 단어다. 열강의 식민통치로 영원히 산업화 될 수 없는 상태에 놓였던 비서구권 지역들의 산업화, 근대화가 시작됐으며 그들의 '진출'이 없었다면 이들 지역은 여전히 무지몽매한 전근대 사회에 머물렀을 것이란 식민지 근대화론은 몹시 오만하고 식민통치를 미화하는 침략자의 논리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학설은 민족주의가 점차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점점 힘을 얻고 있다. 각종 기록과 데이터, 특히 통계로 무장한 식민지 근대화론은 더 이상 언급조차 못할 '망발'이 아닌 정식 학설로 인정받고 있는 모양새다. 서구권에서는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이 본국에 별다른 경제적 도움이 되질 않았으며, 식민주의가 처음 시작된 16세기 대항해시대때조차 대서양을 사이에 둔 아메리카와 유럽, 아프리카 간 삼각무역보다는 지중해와 북해 내에서 유럽국가들끼리 벌였던 해상무역이 더 큰 부를 가져다주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식민통치 시절의 거의 모든 물적 토대가 6.25 전쟁으로 사라져 근거조차 하나도 없는 일본마저 일제강점기 조선식민지에 세운 도로와 철도, 공장이 한국 근대화의 토대가 됐다는 '시혜론'이란 주장을 일삼고 있다. 국내에서도 기존의 '수탈론'에서 벗어나 식민지 시대에 통계상 고도 경제성장이 일어나 이것이 해방이후 한국 산업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출현하게 됐다.
이들 주장의 주요 근거는 '통계'다. 일제강점기 이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4%대, 1인당 소비 증가율은 3%대 후반을 기록했으며, 산업구조도 농업비중이 1910년대 85%에서 1940년대 50%대로 줄어들었으며, 공장도 40여개 남짓에서 4000개 정도로 빠르게 늘었다는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의 주요 논거다. 일본의 식민지화와 수탈 이전부터 구한말 사회적 위기가 중첩되며 전근대적인 생산양식은 한계에 부딪혔으며, 일제강점기 체화된 자본주의적 사회구조가 1960년대 이후 산업화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 주요 논지다.
얼핏 들어보면 상당히 논리적인 수치들이지만, 문제는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일제강점기에는 제대로 된 통계자료가 하나도 없었다는데 있다. 통계학이란 학문이 등장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지금과 같은 통계방식이나 기술적인 발전도 미비했기 때문에 당시 통계란 도저히 믿지 못할 것들 투성이다. 더구나 2차세계대전 이전까지 언론은 철저히 당국의 검열과 통제를 받았다. 구한말 조선조정이 만든 경제 통계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만든 경제 통계든 믿을만한 수치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나마 1938년 일제가 국가총동원령을 내려 전시경제로 돌입한 이후로는 일본 내에 남아있는 통계 자료도 극히 드물다.
또한 해방직후 공업지역이 거의 없던 남한 지역은 일제가 남긴 물적토대도 거의 없었던데다, 이마저도 6.25 전쟁으로 거의 다 파괴됐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근대화와 일제강점기의 연결고리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는 상황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일제가 조선에 자본주의 방식을 이식해줬고, 이것이 한국 근대화와 연결됐다면 조선인 상당수가 일제에 의해 교육을 받았어야하지만, 일제말기까지 전문학교를 나온 조선인의 숫자는 전체 0.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 Google 翻訳
「植民地近代化論」は、韓国だけでなく、西欧列強の植民地支配を受けて2次世界大戦後に独立した、アジアとアフリカの多くの国の人々には大きな怒りを起こす言葉だ。 列強の植民地支配に永遠に産業化されることがない状態に置かれた非西欧圏地域の産業化、近代化が開始されており、彼らの「進出」がなければ、これらの地域は、まだ無知蒙昧な前近代社会にとどまっという植民地近代化論は、すごく傲慢で植民地支配を美化する侵略者の論理で照らしているからである。
しかし、この学説は、民族主義が徐々に弱体化されている状況で、ますます力を得ている。 各種記録やデータは、特に統計で武装した植民地近代化論はもはや言及できない」妄言」ではない正式学説で認められている形だ。 西欧圏では、帝国主義の植民地政策が本国に特別経済支援がドゥェジルず、植民地主義が始まった16世紀大航海時代にさえ大西洋を挟んだアメリカとヨーロッパ、アフリカ間の三角貿易ではなく、地中海と北海の中で、欧州諸国同士行った海上貿易が大きな富をもたらしたと主張している。
さらに植民地支配時代のほぼすべての物的土台が6.25戦争に消え根拠すら一つもない、日本さえ日本植民地時代の朝鮮植民地に立てた道路と鉄道、工場が韓国近代化の土台になったという「恩恵論」という主張を事とている。 国内でも、既存の「収奪論」から抜け出し、植民地時代に統計上の高度経済成長が起こり、これが解放以後韓国産業化に大きな影響を及ぼしたという植民地近代化論が出現するようになった。
これらの主張の主な根拠は、「統計」だ。 日本植民地時代以降、年平均経済成長率は4%台、1人当たりの消費増加率は3%台後半を記録し、産業構造も、農業の割合が1910年代、85%から、1940年代の50%台に減り、工場も40以上余りで4000本程度速く増えたことが、植民地近代化論の主要な論拠だ。 日本の植民地化と収奪以前から旧韓末の社会的危機が重なっされ前近代的な生産様式は限界にぶつかったし、日本植民地時代マテリアライズ資本主義的社会構造が、1960年代以降、産業化の基礎になったということが主な論旨だ。
一見聞いてみると、かなり論理的な数値だが、問題は、1910年代から1940年代まで日本植民地時代には、しっかりとした統計データが一つもなかったことにある。 統計学とは調査が登場したばかりでもなかったし、今のような統計方法や技術的な発展にも不備だったので、当時の統計とは到底信じられないものだらけだ。 また第二次世界大戦以前にマスコミは徹底的に当局の検閲と統制を受けた。 旧韓末、朝鮮の調整が作成された経済統計も、日本植民地時代の朝鮮総督府が作成された経済統計も信頼できる数値で表示には限界がある。 それでも1938年、日本が国家総動員令を下し展示経済に突入して以来、日本に残っている統計資料も極めて珍しい。
また、解放直後工業地域がほとんどなかった韓国の地域は、日本が残した物的土台もほとんどなかったうえに、これも朝鮮戦争でほとんどすべて破壊された。 1960年代以降、韓国の近代化と日本植民地時代のつながりは見つけるみるよ見つける見ることができない状況である。 植民地近代化論者の主張のように、日帝が朝鮮に資本主義の方法を移植したし、これは韓国の近代化と接続とすれば朝鮮人の多くが日本で教育を受けたはずですが、日本末期まで専門学校を出た朝鮮人の数は、全体の0.1%水準に過ぎない。
アジア経済は[統計で読む歴史]日帝の植民統治のおかげで近代化?...収奪の名分与えた「統計」と云う題目で記事化。
併合時代での朝鮮半島での実態で、資料が無かった事を論って此れを否定する南朝鮮。
然し、併合前にはマトモな情報すらも無かったのだから比較自体が間違い。
生活も文化も水準が飛躍的に高まったのは事実で、大いに富を齎した事は完全に無視してる論調には辟易する。
統計を否定して置き乍、自分達は根拠の無い統計を基準にして併合時代を批判する矛盾。
朝鮮人のこう云う意識こそが全てを駄目にしてる認識は無いのかと。
posted by 天野☆翔 at 17:37 | Comment(0) | International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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